5
* 다랑 와론 논CP
불의 아이가 바꾼 미래
특수 1기를 모방해 만든 특수 2기. 담청색 기린 지우스가 선별한 자들과 견습들로 모여 만들어진 구성은 객관적인 타인이 평을 내려도 특이하다 말할 것이었다. 모난 구석 투성이인 강자들이 성격을 굽혀 성과달성을 위한 조직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지금, 특수 2기는 조용히 여러 사람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이들을 과연 팀으로 엮는 것이 옳은 것인가. 회적색 여우와 흰 사슴이 특이한 케이스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호사가들의 터진 입을 꿰매기라도 하듯 지우스를 주축으로 기사들은 눈에 띄게 유기적으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특수 2기가 내는 임무의 결과 또한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혹자는 견습 없이도 담청색 기린이 기사들을 통솔할 수 있는 지휘관이 아니냐며, 견습 합류에 대해 반색을 표했다.
그렇게 창설된 특수 2기는 기사와 견습기사의 시너지를 올려줄 수 있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주는 듯했다.
챙, 날카로운 창끝 날이 검의 넓은 면을 세차게 두드렸다. 금속끼리 맞부딪히는 날카로운 마찰음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병장기끼리 부딪힌 강도는 지름 30cm의 통나무를 한 번에 관통할 수 있는 파괴력을 동반했다. 그를 증명하듯 검신의 진동이 하늘색 너구리 다랑의 손아귀가 잘게 떨렸다. 기사라는 위명이 헛되지 않게 그는 손잡이에서 손을 놓지 않기 위해 손바닥을 조이며 론누를 튕겨내는 동시에 검신을 몸 옆으로 최대한 끌어당겨 다음 공격을 대비했다. 예상한 공격이 언제 날아들지 계산하며 양다리의 보폭을 벌리고 발꿈치를 바닥에 댄 채 중심을 단단히 잡았다.
당겨든 대검의 손잡이는 다랑의 이마 위쪽에 자리했고 손잡이와 그의 묶이지 않은 앞머리가 대칭을 이루었다. 대칭 사이에 가라앉은 눈빛은 평소와 다르게 진지함을 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두 눈을 마주보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얼굴을 가린 와론이었다. 투구 속에서 빛 한줄기조차 받지 않아 반사되지도 않는 안광, 그러나 다랑은 확신했다. 투구가 만들어낸 그림자 속에서 매섭게 쏘아보고 있는 시선을 말이다.
와론은 힘껏 던졌던 론누가 그에 못지 않은 힘으로 튕겨나오는 것을 보고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변함없이 가벼운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풍겼다. 일반인이라면 태도에 압도당했을 테지만 마주보고 있는 사람은 또 다른 기사였다. 무기를 날려보내 무력해진 것처럼 보이는 상대에게 긴장을 푸는 일도 없이 다랑의 이마에 구슬진 땀방울 하나가 흘러내렸다.
이후 와론이 강하게 튕겨나가 허공에서 빙글 돌고 있는 론누를 회수하려는 듯 손을 허공에 올렸다. 순간 공중에 있던 론누가 와론의 의지를 읽은 것처럼 멈추더니 제멋대로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그에게로 날아왔다. 날아온 한손으로 창대를 부여잡은 와론은 창끝을 상대에게 가리켰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겠지.”
다랑은 대답을 하기 전 다리 쪽으로 급하게 치고 들어오는 론누를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바닥에 자욱한 모래안개가 퍼졌다. 그의 손에서 제멋대로 움직일 수 있는 론누는 적의 손에 돌리고 싶지 않은 무기였다. 그 적이 와론이라면 더더욱.
“기사 사냥인가요.”
“… 기사라고 지칭할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면 그렇겠지.”
리치가 긴 무기를 상대로 멀어지는 것은 전투 중 좋은 판단이라고 말할 수 없었지만 다랑의 감각이 근처로 다가가는 것을 꺼리게 했다. 팔에 달린 쇳덩어리 보호구를 볼 때마다 근접전에 대비한 큰 수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도망쳐서 후일을 도모하거나 와론과 싸움을 피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다랑은 몸을 가릴 수 있는 나무를 힐금거렸으나 입술을 질끈 물고 대검을 몸 앞으로 치켜들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와론의 속도라면 그들을 따라잡는 것은 금방일 것이다. 다랑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마음의 양심가책과 용의 후예를 쫓는 특수 2기와 견습 기사들을 막아야 한다는 의무감, 마스터피스 도토리 한 자루뿐이다.
와론은 조용히 다랑을 바라본다. ‘기사 사냥’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상대의 표정이 건방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막아서는 주제에 발걸음을 잡아보겠다고 던진 단어에 열이 오른 것도 아니다. 과거에 벌였던 일을 책임지겠다며 임무를 방해하는 적의 편에 서서 기사에 칼을 들이미는 꼴이 기사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 눈을 깜빡거리며 타이밍을 쟀다.
와론은 다랑이 그의 발목을 잡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뚫고 가야 하는 적인 셈이다. 평소 둔하거나 말실수를 하는 부분에서 어리숙함이 보이긴 했지만 적으로 만났다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상대였다. 속도가 빠른 편이라 따돌리기도 어렵다.
“발목이라도 잡을 생각인가.”
“….”
다랑은 대답 대신 도토리의 손잡이를 잡았다.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손바닥에 닿은 천이 안으로 말리면서 마찰을 줄여주었지만 땀까지 막아줄 수는 없었다. 와론과 다랑의 허공이 시선이 맞부딪혔다. 전략을 상회하는 감각적인 판단이냐, 순간판단을 뛰어넘는 전략이냐. 어떤 것에 우위를 잴 수는 없다. 하지만 와론과 다랑은 동시에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싸움에서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라고.
두 사람은 싸움을 회피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부터 이 상황을 가정해 짜놓은 라우룬의 판단이었을지 모르지만 둘이 맞부딪히는 것은 필연이었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지면에 발바닥이 닿아 있는 시간보다 검의 궤적을 쫓고 창대가 다리 균형을 무너뜨리려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내고, 그것을 막는 공방이 길었다. 힘의 우위는 확실했지만 와론이 창대로 공격을 흘려내며 다랑의 옆구리 살을 갈랐다. 어두운 자색천이 탁하게 물들었지만 출혈을 막을 시간은 부족했다. 다랑은 허리 부상을 입은 채로 대검으로 바닥을 내리찍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검이 지면에 닿는 순간 크게 바람이 일며 파동이 일어났고 와론의 망토가 펄럭였다. 론누로 공기압을 막으면서 일정거리 물러난 와론의 몸이 저릿저릿했다.
와론의 방어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으며 주변을 경계했다. 바로 다랑에게 달려들 생각이었지만 머리 위까지 자욱하게 올라오는 흙먼지에 시야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다랑의 공격이 쏟아질지 몰랐다. 상대도 시야가 차단된 것은 마찬가지이겠지만 기척만으로 와론의 위치를 알아차릴지도 몰랐다. 론누를 쏘아올려 시야를 확보할까 싶었지만 그만뒀다. 그 사이에 공격해 온다면 무방비해지는 순간이 올 수 있었다. 리아민이나 루디카 정도의 무게와 리치의 공격이었다면 팔로 막아볼 시도를 해볼 수 있었겠지만.
‘도토리에 맞는 순간 적어도 양팔이 박살날 각오를 해야겠는데.’
무게와 근력을 판단했을 때 양팔이 분질러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창잡이에게 양팔의 손실은 치명적이다. 론누를 아무리 움직일 수 있다고 해도 과다출혈로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 미세하게 컨트롤할 수 있을까. 도토리의 공격을 흘려낸 론누가 아직도 저릿하게 진동한다. 론누를 쥔 와론은 짧은 시간 내 위험판단을 끝내며 자리를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바닥에 깊숙이 발자국이 패이고 와론이 나무 위로 붕 떠올랐다. 나무가 울창하니 몸을 숨긴 채로 론누로 경계하고 있는 틈에 팔다리에 구멍을 뚫어 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공에 떠있는 동안 다음 수를 생각하며 눈으로 다랑의 위치를 좇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아래에서 와론의 가슴을 향해 날카로운 돌멩이가 날아왔다. 돌팔매질을 해도 날아오기 어려운 거리여서 착지를 생각하고 있던 와론은 움찔하며 안쪽 팔로 막아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하는 1~2초 사이에 다랑이 와론의 위로 뛰어올랐다. 도토리가 머리 위에서 와론의 투구 위로 쏟아져내려왔다. 허공에서 자세를 바꾸기 어려울 것을 노린 공격이었다. 도토리의 날이 파랗게 물들며 빛을 냈다.
“이런, 젠장.”
론누를 틀어 날붙이에 실린 힘을 피해 최대한 몸을 틀었다. 론누의 창대가 도토리의 힘을 막았지만 완전히 막지 못해 와론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다랑의 손에 뼈가 갈리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부상 입히는 것을 뒤로하고 다음 수를 막기 위해 다랑이 힘을 실어 와론을 세게 쳐냈다. 실린 힘에 떠밀려 와론의 몸이 그대로 숲으로 떨어졌다. 우지끈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와론이 나동그라졌다.
“장난 아니잖아.”
등이 저릿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와론은 호흡이 쉬이 되지 않아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나동그라진 와론 앞으로 다랑이 다가왔다. 공격에 성공했으나 허리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출혈에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다. 한손으로 옆구리를 부여잡고 한 손은 도토리를 들고 와론에게 다가섰다.
“따라오지 않는다면 공격하지 않겠습니다. 제 목적은 와론 씨와 싸우는 게 아니니까요.”
“하.”
벌써부터 다 이긴 것 같은 태도에 손바닥을 말아쥐었다. 론누는 와론의 손으로부터 조금 먼 곳에 떨어져있었다. 가져오려고 하는 순간 다랑의 검날이 와론 자신을 향할 것을 알았다. 와론은 시간을 벌 셈으로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눕혔다.
“너구리.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저는 그 사람들의 손에 죽을 생각입니다.”
“….”
“그러니까 여기서 발목을 잡힐 수는 없어요. 그리고 와론 씨도 해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게 용의 후예를 돕는 것이랑 무슨 상관인데.”
“저는.”
무슨 얘기를 해도 납득하기 어려울 이야기다. 용의 후예 몰살에 가담했고 그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그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는 얘기를 누가 이해나 할까. 그러나 그것이 하늘색 너구리라는 사람이 죄를 속죄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투명한 초록색 눈동자가 피에 침잠되는 것처럼 탁해진다. 동공이 살짝 풀리며 와론 너머의 무엇을 보는 듯 했다.
“그 사람의 손에 죽어야만 해요.”
와론은 다랑과 처음 대치했을 때처럼 시선을 부딪히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게 네 명예냐?”
“….”
“….”
“저도 모르겠어요.”
잠시간의 침묵. 껄끄러운 말들 와론의 목을 간지럽혔다. 하지만 사람은 타인의 말과 바람으로 바뀌지 않는다. 설득하거나 개안을 위해 던지는 단어와 낱말은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기사라고 무어 다를 게 있을까.
와론의 손에는 어느새 조금 멀리 떨어져있던 론누가 잡혀있었고, 다랑의 표정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와론의 귀에 멀리서 와론과 다랑의 이름을 부르는 특수 2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론은 피가 흘러내리는 어깨를 지혈하며 등을 구부리고 앉았다. 그 자세로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등신 같은 놈…”.
[글쓴이] 와코 님